성도들은 명절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1. 제사는 조상공경의 유일한 방법인가? 원래 한민족 고유의 제사는 유일신인 천신(하늘신)을 숭배하는 제사였다(윤내현 교수 [고조선의 종교와 그 사상](1993,『동양학』제23집,단국대학교). 고조선의 천신숭배 사상은 이어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의 제사의식으로 발전해서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의 사고방식과 말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하늘이 노했다." "아이구, 하나님(하늘님)!",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나님 맙소사!" 등의 말이나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란 생각도 천신숭배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다가 삼국시대에 만주지방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지신(地神)을 섬기기 시작했고, 성황당이나, 고사 같은 마을신 숭배사상이 되었다가 고려시대부터 조상신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주자가례'에 근거해서 누구나 4대조까지 섬기도록 하기 전에는 신분에 따라 섬길 수 있는 댓수가 정해져 있어서 조상제사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조상 제사는 결코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다. 지금처럼 누구나 다 제사를 하게 된 것은 비교적 근대의 일이다. 그런데도 조상공경과 제사의식이 마치 한가지인 것처럼 오해해서 제사의식이 아니면 조상 공경이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2. 조상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 미풍양속이라고 하지만, 미풍양속이라면 어떤 좋은 영향이 있어야 하는데 제사제도는 좋은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가난을 감수하는 예가 비일비재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가정불화가 생긴다. 제사는 미풍양속이기보다는 오히려 우상숭배적인 요소가 강하다. 제사에는 신주(神主)라는 것이 있어서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데, 그 앞에 절하면서 복을 빌거나, 저주를 면해보려는 마음을 가지므로 분명히 우상숭배다. 성경의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인데 제사는 귀신을 돌아가신 조상이라고 함으로 쉽게 귀신들과 접촉하도록 만드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성경은 귀신과 접촉하는 일을 절대 금하고 있다(신 18:11-12) 또 하나님의 심판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 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며,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다고 하는데, 제사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귀신이 되어서 산 사람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산 사람과 교제할 수도 있다고 함으로써 심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3. 성도는 제사음식도 만들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고전 8장)에 이 문제를 말하면서 조상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친다는 것은 다만 인간의 생각일 뿐이지 실제로 조상귀신(?)이 와서 먹고 가는 것은 아니다. 흔히 귀신이 먹은 증거로 음식의 무게가 줄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남으로써 자연적으로 음식에서 수분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결코 조상귀신이 먹는 것이 아니다. 조상의 혼은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명절에 모여서 음식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거리낄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음식은 가족들이 모여서 나누어 먹는 정이다. 4. 성묘는 해야 하는가? 물론 무덤 앞에서 절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절이라는 것은 경배를 의미하는 것인데, 성도의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위패 앞에 절하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죽은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이 부모의 묘를 찾아가서 둘러보고, 또 후손들이 서로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나, 교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5. 성도에게 명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가족의 삶을 지켜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리고 직업을 따라서 도시마다 뿔뿔이 헤어져서 살다가 명절이면 한데 모여서 가족임을 확인하고, 우의를 다짐하는 기회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고, 살아 계신 부모나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바쁜 현대의 삶을 잠시 접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6. 추도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 추도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임직식이나, 각종 감사 예배가 사람에게 드리는 예배가 아니듯이, 추도예배도 조상에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부모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 것인가를 초점으로 하기 때문에 추도예배는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7. 추도예배 순서: 사회: 가정의 아버지나 장남, 또는 큰 자녀가 인도 한다. 묵상기도-사회자 / 신앙고백-사도신경 / 찬송-340 장 / 기도-가족 중에서 연장자나, 신실한 신앙인이 한다. 성경봉독-히브리서 11장 3-6절. 설교: 서론-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저 이 세상에서 실컷 잘 먹고, 잘 살면 그만 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먹고살다가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가 사는 것도 믿음으로 살고, 죽은 후에도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론-(4절)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은 아벨이 드린 예물에 대해서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었어도 여전히 말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믿는 자는 죽었어도 믿음으로 말합니다. 우리 보다 먼저 가신 ()()()께서도 믿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사람, 하나님을 바로 섬긴 사람에 대해서 세상은 알아주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칭찬하고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삶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패역한 자인가?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5절) 에녹은 아주 특이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 운 사람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특별한 경우를 하락하셨을까요? 그것은 에녹의 경우를 갖고 우리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후의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또한 부활이 있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 주셨고, 또한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믿는 사람들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누가 이 부활의 축복이 참여하는 사람입니까? (5절하)을 보니까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우리의 ()()()께서도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부활의 축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결론-(6절) 그러므로 우리 자손들도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기도-설교자 / 찬송-539장 / 주기도- 다같이 / 고인에 대한 추억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