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결국 두려움이다.

2013.5 SBS드라마 장옥정에서 숙종이 사고로 의식을 잃은 뒤 대비에 의해서 쫓겨난 장옥정을 숙종의 당숙인 동평군이 보호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때 동평군이 장 나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함께 청국으로 가자. 거기서 새로 시작하자.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것이다.’ 그러자 장옥정이 대답하기를 아뇨. 청국에는 제가 갖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한다. 동평군이 네가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장옥정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갖고 싶은 것은 전하, 오직 그분 한 분 뿐이옵니다.’ 드라마에서 장옥정, 즉 장희빈에게 오직 갖고 싶은 것은 그분 한 분뿐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분이 없다. 아니 있다.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오직그분이 아니라, 많은 것들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에게는 과연 오직 그분이 계시는가? 예수님은 '세상의 힘'을 초월해서 '666'이 아닌 '하나님의 인'으로 우리에게 인치시고,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들이 되게 하는 분이시다. 만약, 우리가 오직 그분이라고 고백한다면, 666은 아무 힘이 없을 것이지만, 만약 우리가 오직을 잃어버린다면 수많은 666들이 내 이마에 인을 치려고 덤빌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 13장을 잘 보면 666은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누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짐승의 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안 받는 것이다. 그러나 짐승의 표가 필요한 사람은 제 발로 찾아가서 받을 것이다.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15-17)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매매를 한다, 못한다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계되기 때문에 그 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아래서 사고 파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두려움과 염려가 우리로 하여금 머릿속에서 생각은 하는데, 믿음으로 살지는 못하게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666이란 현실에 대한 보장인 것이다.

그것을 미술칼럼니스트인 손철주 씨가 국민일보에 사는 것은 낚이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그림과 글로 설명한 적이 있다. 조선 말 추사의 제자인 허련이란 화가의 그림은 쏘가리 두 마리가 꿰미에 묶여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쏘가리는 먹성이 좋고, 오동통해서 붙인 별명이 ()돼지라고 한다. 그러면 허련은 무슨 이유로 쏘가리를 그렸을까? 보통 조선시대에 쏘가리를 그리는 사람들은 모양보다는 그 이름 때문에 그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쏘가리가 한자로 궐어인데, 자가 대궐 궐()자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쏘가리를 그리면 입궐하라는 얘기가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임금님이 계시는 대궐에서 벼슬아치가 되는 것이 쏘가리 그림의 속뜻이고, 그 그림처럼 쏘가리를 묶어놓으면 벼슬을 꽉 잡아두라는 신신당부였다. 문제는 허련은 두 마리를 그려서 대궐이 두 개가 돼버렸으니 임금이 둘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자칫 모반죄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걸 몰랐을 리가 없는 허련이 이렇게 위험한 그림을 그려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입이 꿰인 쏘가리는 처량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벼슬하는 자의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를 그린 것이다. 그래서 손철주 씨는 이렇게 말했다. ‘놀고먹는 벼슬 없고, 주워 먹는 봉급 없다. 밥을 벌어먹는 자의 운명이 미끼를 삼킨 쏘가리와 저토록 닮았다.’ 또 소설가 김훈도 이렇게 썼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 사는 게 낚이는 거로고..... 직장인들만이 아니다. 재벌 회장들도 결국 낚싯바늘에 꿰어 살기는 마찬가지다. SK 최태원 회장은 사촌 형제인 최신원 KC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하면서 거액의 급전이 필요했다. 그때 김원홍이라는 역술인(무당)의 말을 듣고 5,700억 원 선물투자를 했다가 전부 다 날렸다. 문제는 최 회장이 2003SK사태로 7개월간 구속 수감되었을 때 기독교인이 됐다는 것이다. 출옥 후, 거의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에 참여했고, 2004SK 51주년 기념식에서는 자기 시련을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간증도 했다. 그런데 2007~8년부터 교회출석을 안 하더니 무당을 그룹의 고문으로 앉히고 수천억 원을 날린 것이다. 두려움의 문제였다. 결국 최태원 회장의 666은 무당의 말이었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필요한 돈이었으며, 그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염려와 불안이었던 것이다. 그것들이 현실의 보장이 될 거라고 착각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 모든 두려움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다. 그래서 요일 4:18은 이렇게 말씀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가? 아니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의 염려와 두려움 뛰어넘어야 한다. 오직 그분을 붙잡고 다른 것을 내려놓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주는 666이 아무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을 다 내려놓아도 만족할 그분의 사랑이 있는 사람에게는 666이 아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