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과연 괜찮은가 2

지난 시간에 요가를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시각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기독교 안에는 요가에 대해서 서로 상이한 시각과 자세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문제를 접근할 때는 문화 포용적인 입장이나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닌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가 분명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4. 거두절미하고, 그러면 기독교인이 요가를 할 수가 있는가? 인도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요가 운동은 없다고 봐야 한다. 초급단계인 아사나와 호흡법인 프라나야마를 중심으로 하는 하타 요가, 명상을 중심으로 하는 아자 요가에서 좀 더 들어가면, 잠재된 에너지를 각성시키기 위한 무드라와 명상을 중심 수행으로 하는 쿤달리니 요가(쿤달리니 탄트라)가 있는데, 한국요가 연수원 원장인 이태영 박사에 의하면, ‘요가의 호흡 수행을 하면 모든 기를 통제하여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예언의 능력, 생각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미세한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타인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 사물을 보이지 않게 하는 능력, 공중부양의 능력 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현대종교 2004.8) 무드라의 효과로 주름과 백발이 없어지고, 죽음을 극복하며, 이런 능력이 초능력이고, 요가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신인합일(神人合一)사상이다. 이쯤 되면 아무도 요가가 종교가 아니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신인합일은 창세기 3장에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처럼 되어라고 했던 그 원죄의 내용이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떻게 교회 안에서 행해질 수 있으며, 국가 주도로 공교육의 현장에서 이런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는가? 정교분리의 원칙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5. 요가 수련을 깊이 하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어떤 이들은 집에서 비디오를 보고 요가를 했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것은 요가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요가를 할 때는 운동을 한 후에는 주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데, 그때 벽에 불교 관련 그림과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음악 때문에 영적으로 불안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한국 요가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가 체위를 스트레칭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스트레칭은 근육의 이완과 수축으로 탄력을, 관절의 운동범위를 넓혀 유연성을 얻는 것이 목적이지만, 요가 수행법은 체위와 호흡 명상법을 통한 삼내를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즉 심신의 균형적 조화로 궁극적인 자아의 초월적 세계를 목표로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요가는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생에서의 업으로 인해 내생이 결정되는 환생의 바퀴를 요가를 통한 해탈로 벗어나면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가는 육체적인 것(운동)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뉴에이지적인 범신론과 윤회사상을 심어주는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요가 수행법을 하면 이런 영향이 있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다스리는 훈련을 한다. 명상을 하고 정신통일훈련, 의미 없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훈련(주문), 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신체훈련도 한다. 이러는 사이에 명상과 정신통일 훈련에 다른 영이 틈타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를 통달하면 자율신경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자기 암시로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겨나게 할 수도 있다. 이 단계를 수련한 예수 잘 믿던 어떤 여자는 요가수련을 하면서 예수도 부처나 다른 힌두교의 성자들처럼 구세주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일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단계에는 악령의 권세에 빠져 들어간다. 영적인 힘으로 텔레파시, 예감력, 투시력, 독심술, 공중 부양술을 부리며, 외부의 영들을 불러들이는 영접술도 행한다.(성경은 신접자들은 돌로 쳐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 번째 단계에는 결국 악령숭배자가 된다. 완전히 악령에 사로잡혀 흑색마법도 행하고, 특히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고 할 수만 있다면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그래도 기수련, 요가수련이 단순한 건강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요가나 기수련에 빠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국은 사단의 궤계에 빠져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기독교신앙에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국가가 주도하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이런 종교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6.그럼, 이미 요가를 하고 있거나, 요가운동이 직업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다. 백번 양보해서 요가를 단순한 운동이라고 인정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굳이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요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본래의 목적대로 스트레칭 쪽으로 방향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면, 적합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서 직접 그 창시자가 되고, 요가에서 행하는 손동작(여기에 종교적인 의미가 집중됨)을 뺀 순수한 운동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종교성이 담긴 부분을 제거하고, 운동에 해당되는 부분은 조심스럽게 수용해서 사람 몸을 이완시키는 순수 운동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운동을 굳이 종교성 진한 것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